럭키 칠곡
문화로 잇다 II
칠곡을 빛낸 찬란한 그 이름
칠곡은 영남 인재의 요람답게 장택상 국무총리를 비롯해 신현확 국무총리, 조선희 사진작가 등 우리나라 정치, 경제, 문화 등 각 분야에서 활약한 걸출한 인재를 배출한 곳으로 유명하다.
그중 정치와 체육계에서 한 획을 그은 이수성 전 국무총리와 곽태휘 전 국가대표 축구선수를 만나본다.
‟칠곡은 제 핏줄이 이어져 온
특별한 곳입니다”
–
이수성 전 국무총리
이수성 전 국무총리(86)는 일제강점기인 1937년 함경남도 함흥에서 태어났다. 칠곡군을 너무나 사랑했던 부친 이충영 변호사가 당시 함흥법원의 판사로 재직했었기 때문이다. 이후 1941년 창씨개명을 거부하고 판사직을 사임하신 부친을 따라 1941년 평양에서 서울로 이사를 했다. 그는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서울대 교수를 지냈으며, 법대 학장을 거쳐 1995년에는 서울대 총장이 되었다. 서울대 총장 재임 시절인 1995년 12월 29대 국무총리로 기용되어 1997년 3월까지 문민정부 최장수 국무총리로 이름을 올렸다. 그런 그에게 칠곡은 500~600년 동안 조상이 터를 잡고 살아온 고향이자 핏줄이 이어져 온 특별한 곳이다. “고향이란 바로 저 자신이며 절대적인 사랑과 경의의 본질입니다. 어디에 있건 늘 그립고 정 깊은 곳, 내 핏줄의 본향입니다.” 서울에서 자랐지만, 칠곡은 유년기부터 지금까지 인생의 뿌리인 만큼 언제나 그리움으로 남아있다. “6·25전쟁 전· 후의 느낌은 좀 다릅니다만, 고향의 어른들, 그때 만난 친구들, 낙동강의 추억, 납북되신 아버님의 이름을 부르시며 돌아가시던 할머님의 모습, 왜관으로 옮긴 큰집에서 보냈던 방학기간 등 무엇 하나 잊히는 것이 없는 그리움입니다.” 세월이 흐르면서 가까이 지내던 집안 어른들이 세상을 떠나며 칠곡을 찾을 기회는 잘 없지만, 여전히 고향 산천은 눈을 감으면 떠오른다는 그. “고향을 생각할 때마다 신동초등학교에서 성당을 지나 신동으로 가는 길, 저수지와 백운동계곡, 왜관의 이 골목 저 골목 다 만났던 분들이 아련하게 떠오릅니다.”
고향 칠곡을 향한 그의 마음은 마지막 당부의 말에도 고스란히 담겨 있다. “군수님, 면장님을 비롯한 공직자의 열정과 선량하고 올바른 군민 모습의 힘으로, 아름답고 행복한 곳이 되리라 확신합니다.”
‟어린 시절
모든 추억이 담긴 곳, 칠곡입니다”
–
곽태휘 전 축구 국가대표
곽태휘 전 국가대표 축구선수(42)는 왜관에서 태어나 동부초등학교, 왜관중학교를 졸업하고 왜관 순심고등학교 1학년 재학 중 대구공업고등학교로 옮겨 늦깎이 축구 인생을 시작했다. 타고난 신체조건과 피나는 노력 덕분에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경기에 나설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연습게임 중 왼쪽 눈에 공이 맞아 실명하기에 이르렀다. 그런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은 그는 남들보다 2배에 가까운 훈련량을 소화하는 등 재기에 나서 선수생활 8년 만인 2005년 서울FC에 입단하며 인간 승리를 보여줬다. 이후 2008년 한국 축구대표팀에 중앙수비수로 발탁된 것을 시작으로 2017년까지 한국 축구 대표로 58경기에 출전해 5득점을 기록했다. 지난 2010년에는 남아공 월드컵을 앞두고 치른 평가전에서 왼쪽 무릎인대가 파열되면서 월드컵의 꿈을 접어야 했다.
그런 그에게 칠곡은 어린 시절부터 청소년 시절까지를 보낸 고향이자 모든 추억이 담긴 곳이다. “현재 부모님이 왜관에 살고 계시기 때문에 부모님도 뵙고 친구들도 만나러 고향에 자주 가고 있어요. 고향은 누구에게나 그렇겠지만, 갈 때마다 편안하고 즐겁습니다.”
고향에 대한 애정은 칠곡의 발전에 대한 기대와 당부로 이어진다. “김재욱 칠곡군수님이 고안한 럭키7 포즈처럼 긍정적인 힘이 넘치는 칠곡이 되길 기대하고 있어요. 그리고 군민 모두 행복하고 건강하시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갖은 역경과 고난을 극복하며 오뚜기 같은 축구 인생을 보여준 그는 다음 꿈을 향해 열심히 뛰고 있다. “지도자 과정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잘 배우고 경험해서 지도자로서 당당히 운동장에서 인사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지켜봐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