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 칠곡

락(樂)서장

프랑스 문인협회가 선정한
세계적인 시인의 삶과 예술을 만나다

구상문학관

구상문학관

세계 200대 문인 중 한 사람.
우리나라 현대문학사에도 큰 족적을 남긴 사람. 구상 시인이다.
시인이 걸어온 삶의 흔적을 만나고 작품 세계를 감상할 수 있는 곳, 구상문학관으로 걸음을 옮긴다.


• 경상북도 칠곡군 왜관읍 구상길 191
• 09:00~18:00, 매주 월요일 휴무
• 054-979-6447

삶

세계 200대 문인, 구상

구상문학관은 구상 시인(1919~2004, 본명 구상준)의 문학적 활동을 기리고, 그의 정신을 이어가고자 2002년 10월 개관했다. 구상 시인은 문학적인 자존심이 강하기로 유명한 프랑스에서 뽑은 세계 200대 문인의 한 사람으로 우리나라에서는 유일하게 선정됐다. 특히 구상 시인은 기독교적 존재관을 바탕으로 동서양의 철학과 형이상학을 조화시킨 독보적인 시 세계를 확립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그는 어느 문예지와 한 인터뷰에서 “나의 시는 인간 존재에 대한 인식과 형이상학적 심상을 바닥에 깔고 있어 시의 서정성보다 사상성에 관점을 둔다. 언어를 다루는 시인은 가장 먼저 언어의 화장술을 경계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구상문학관은 구상 시인의 삶과 문학세계를 엿볼 수 있는 전시실과 보존서고, 북카페, 사랑방, 관수재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700㎡ 규모의 건물 1층에는 문단 활동 당시의 모습을 담은 사진 자료와 문우와 주고받았던 편지, 서화 등이 전시되어 있고, 2층에는 구상 시인이 기증한 27,000여 권의 소장 도서가 있다.

구상
시인
예술

창작 활동의 원동력, 칠곡

왜관은 구상 시인의 창작활동 원동력이 된 곳이다. 시인이 칠곡과 인연을 맺은 때는 1953년이다. 6·25전쟁 후 이승만 정권에 대해 반독재 투쟁을 벌여 투옥되기도 한 그는 1952년 승리일보가 폐간되자, 부인 서영옥(1993년 작고) 여사가 의원을 차린 칠곡군 왜관으로 내려와 1974년까지 기거하며 작품 활동에 매진했다. 왜관을 선택한 이유는 덕원수도원이 왜관에 수도원을 건립할 계획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무렵 그는 영남일보 주필을 맡아 대구를 오가며 시인 오상순, 아동문학가 마해송, 걸레스님 중광 등 당대의 예술가들과 폭넓은 친교를 쌓는다. 특히 화가 이중섭은 왜관의 그의 집에 함께 머물며 그림을 그리기도 했는데, 이 무렵 그린 그림이 ‘K씨의 가족’이다. 구상문학관은 부인이 경영하던 순심의원 자리에 세워졌으며, 문학관 뒤편에는 시인이 20년간 거주하며 창작활동을 한 관수재를 복원함으로써 관람객들에게 시인의 문학 향수를 느낄 수 있도록 해준다.

“나는 왜 문학을 하는가?
나는 무엇을 위하여 문학을 할 것인가?
나의 문학이 무엇을 할 수 있는가?
항상 나는 자문과 회의를 거듭해 왔다.
그러나 사물에 대한 자기 진실의 욕구가 오늘날까지 나로
하여금 자질에 대한 실망을 되씹으면서도 시를 붙잡고 시를 쓰는 이유라 하겠다.
문학과 문학인은 결국 존재적인 측면과 문학의 효용적인 측면,
이 두 가지 속성의 분리 속에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 통합 속에서 존재하고 또 그래야만 한다는 것이다.
문학은 나와 남을 위하여 함께 있는 것이 된다.

“나는 왜 문학을 하는가?
나는 무엇을 위하여 문학을 할 것인가?
나의 문학이 무엇을 할 수 있는가?
항상 나는 자문과 회의를 거듭해 왔다.
그러나 사물에 대한 자기 진실의 욕구가 오늘날까지 나로 하여금 자질에 대한 실망을 되씹으면서도 시를 붙잡고 시를 쓰는 이유라 하겠다.
문학과 문학인은 결국 존재적인 측면과 문학의 효용적인 측면, 이 두 가지 속성의 분리 속에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 통합 속에서 존재하고 또 그래야만 한다는 것이다.
문학은 나와 남을 위하여 함께 있는 것이 된다.

<수필집 ‘우리의 삶, 마음의 눈을 떠야’ 중에서>

구상 시인
비전 ON김재욱 칠곡군수 취임 1년
역대 최대 규모 국비 확보하며
지역 가치↑
군청 사람들한 번 더 소통하고 한 번 더 배려하는
칠곡 최고 적극행정 공무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