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할매 콘텐츠’ 확산 예고

칠곡군에서 시작돼 젊은층의 관심을 한몸에 받게 된 ‘K-할매 콘텐츠’에 대한 열기가 날로 뜨거워지고 있다. 지난 1월 30일 칠곡군은 대한노인회와 칠곡형 ‘K-할매 콘텐츠’ 확산 업무협약식을 서울에서 가졌다. 로이터, AP, 중국CCTV 등 세계 주요 외신에서도 주목하고 있는 칠곡 할머니들의 활동을 ‘K-할매 콘텐츠’라고 명명하며, 전국의 노년층을 대상으로 이를 권장하기 위해 마련된 자리였다. 이번 업무협약에 따라 칠곡군은 향후 칠곡 할머니들의 활동 현황과 성과를 전국에 전파하고 대한노인회와 공동으로 노년층 맞춤형 프로그램을 개발할 계획이다.
노년층도 시대에 뒤떨어지지 않고 젊은 세대와 소통하고 새로운 문화를 창출하며 문화의 수혜자에서 공급자로 거듭날 수 있음을 칠곡 할머니들이 증명한 셈이다. 칠곡 할머니들의 대활약으로 칠곡군은 6.25전쟁 당시 다부동 전투의 격전지로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대한민국을 구한 ‘호국 도시’ 라는 타이틀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할매 문화 일번지’로 거듭나고 있다.

열풍의 시작, ‘칠곡할매글꼴’

‘K-할매 콘텐츠’는 뒤늦게 한글을 깨친 할머니들의 개성 강한 글씨체로 제작된 칠곡할매글꼴에서 그 싹을 틔우기 시작했다. 2019년 다큐멘터리 독립영화 ‘칠곡 가시나들’ 덕분에 정규 한글교육을 받지 못한 마지막 세대의 이야기가 알음알음 관심을 받던 와중에 탄생한 칠곡할매글꼴 5종(김영분체, 권안자체, 이원순체, 이종희체, 추유을체).
친근감이 느껴지는 서체와 각 글꼴이 품고 있는 칠곡 할머니들의 스토리가 더해져 사람들은 너도나도 칠곡할매글꼴에 매료됐다. 국립한글박물관은 2021년 칠곡할매글꼴을 유물로 지정하고 영구보전하기로 했으며, 한컴오피스, MS워드, 파워포인트 등은 칠곡할매글꼴을 정식 글씨체로 선보였다. 취임 후 첫 새해를 맞이한 대통령의 연하장에도 칠곡할매글꼴이 사용됐을 정도다. 지난해 3월에는 제주에서 최연소 천재 동화작가로 이름난 전이수 군과 ‘괜찮아’라는 주제로 공동작업한 칠곡할매글꼴 특별기획전까지 열렸다. 꾸준한 인기에 힘입어, 칠곡군은 올해 가독성을 개선시킨 칠곡할매글꼴 5종에 대한 리뉴얼 버전을 내놓기도 했다.

랩 ‘때리는’ 할매 래퍼, 세계가 주목하다

“황학골에 셋째 딸로 태어났쓰! 오빠들은 모두 공부 시켰쓰! 딸이라고 나는 학교 구경 못했쓰!”(수니와칠공주)
“소밥 주다 개밥 줘. 개밥 주다 소밥 줘. 그래도 난 연습해. 랩을 매일 연습해.”(보람할매연극단)칠곡 할머니들의 변신은 무한했다. 지난해 여름 성인 문해교육 과정 중 랩 영상을 처음 접한 할머니들은 랩에 큰 흥미를 보이며 래퍼 그룹을 결성했다. 직접 적어내려간 가사로 지난해 11월에는 왜관읍 쩜오골목축제에서 프리스타일 랩 배틀까지 펼치며 호응을 이끌어 냈다.
칠곡 할머니들로 결성된 래퍼 그룹이 내뱉는 그들만의 거침없는 랩은 국내를 넘어 전 세계로 뻗어나갔다. 세계적인 통신사인 로이터 등 외신 취재가 잇따르면서 ‘K-할매 콘텐츠’로 떠오른 것이다. 로이터 통신은 지난 2월 13일 칠곡군 지천면 신4리에서 평균 연령 85세의 8인조 할머니 래퍼 ‘수니와칠공주’ 관련 기사를 보도했다.
‘Down on the farm, South Korean granny rappers drop the beat(농장에서, 한국 할머니 래퍼들의 비트 주세요)’ 제목의 기사에는 금속 장신구와 헐렁한 바지를 입고 춤을 추며 랩을 하는 할머니들의 영상도 함께 공개됐다. 로이터는 칠곡 할머니 래퍼 그룹에 대해 “농촌 생활에 대한 랩을 통해 인구 침체로 위협받는 조용한 시골 지역에 활력을 불어넣으며 고향과 그 너머에서 큰 성공을 거뒀다”고 평가했다. 이와 함께 “이들의 성공은 한국이 이르면 내년에 인구의 5분의 1이 65세 이상인 ‘초고령화’ 사회가 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나온 것”이라며 의의를 부여했다.

주체적이고 풍요로운 인생 2막을 열어라!

현재 칠곡군에서는 평균 연령 85세의 8인조 래퍼 ‘수니와칠공주’ 외에도 ‘보람할매연극단’, ‘우리는 청춘이다’, ‘어깨동무’ ‘텃밭 왕언니’, 총 다섯 개의 랩 그룹이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특히 수니와칠공주는 지난해 10월 부산 엑스포 유치를 응원하는 뮤직비디오를 제작해 대한민국의 할머니 래퍼 존재를 전 세계에 알렸다. 또 이때 맺은 한덕수 총리와 인연을 바탕으로 최근 서울 청암중· 고등학교 졸업식장에 축하 영상을 전하며 늦깎이 학생이 된 어르신들을 격려하기도 했다. 칠곡군은 반복되는 가사를 암기하고 간단한 손동작으로 춤을 추는 랩이 치매 예방에 효과가 있다는 의학적 소견에 따라 랩을 활용한 치매예방 프로그램도 내놨다.
이런 칠곡 할머니들의 활약은 ‘칠곡할매문화관’ 건립으로까지 이어졌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월 12일 용산 대통령실로 칠곡 할머니들을 초청한 자리에서 어르신들의 평생 학습을 위한 공간인 할매문화관 건립을 약속했다. 이에 칠곡군은 지난 2월 28일 ‘칠곡 할매문화관 건립 건축기획 용역’ 중간보고회를 갖기도 했다. 칠곡할매문화관 건립사업은 왜관읍 202번지 일원 지상 3층 규모(연면적 2,640㎡, 약 800평) 건물에 전시실, 공연장, 교육장을 조성하고, 주차장, 휴게공간 등을 설치하는 것으로, 어르신들의 건강과 삶의 질을 높이는 데 큰 기여를 할 것으로 보고 있다. 김재욱 칠곡군수는 “어르신들이 인생 2막을 가꿀 수 있도록 앞으로도 다양한 지원을 통해 고령층 문화를 선도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고령 인구 천만 시대, 피할 수 없는 이 현실에서 칠곡군은 이것을 위기가 아니라 또 하나의 기회로 만들어가고 있다. 할머니들을 중심으로 한 칠곡군만의 새로운 문화가 기대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