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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로 잇다 1

칠곡할매글꼴
대통령실을 찾은 칠곡할매글꼴 주인공 할머니들과 김재욱 칠곡군수, 정희용 국회의원

대통령실을 찾은 칠곡할매글꼴 주인공 할머니들과 김재욱 칠곡군수, 정희용 국회의원

칠곡할매글꼴을 모르면 간첩이라는 말이 나올 만큼 칠곡할매글꼴의 인기가 심상치 않다. 칠곡할매글꼴은 칠곡군이 마련한 ‘성인문해교육’을 통해 일흔이 넘어 한글을 깨친 추유을(89), 이원순(86), 이종희(81), 권안자(79), 김영분(77) 등 다섯 명의 할머니가 4개월 동안 종이 2천 장에 수없이 연습한 끝에 제작된 글씨체다. 대통령 연하장을 비롯해 간판, 명함, 현수막에서 사용되더니 전시회, 카카오톡 이모티콘으로 폭을 넓힌 칠곡할매글꼴은 칠곡할매문화관 건립 추진으로 이어지며 칠곡군의 대표적인 문화관광자원이 되고 있다.

칠곡할매글꼴의 탄생

칠곡군은 일제강점기와 가난으로 한글교육을 받지 못한 마지막 세대 할머니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성인문해교육의 성과를 점검하고 한글 문화유산으로 기록하기 위해서 글꼴을 제작했다. 2019년 9월 글꼴 제작을 위해 성인문해교육을 받고 있는 400여 명의 할머니 글씨체 가운데 개성 있는 다섯 할머니의 글씨체를 선정했다. 선정된 할머니들은 마치 마지막 유언을 남기듯 온 힘을 다해 글씨 연습에 매진했다. 글꼴 제작 과정은 할머니들에게 험난했다. 특히 특수문자와 영어는 그야말로 도전이었다. 할머니들은 한글 말고도 알파벳과 숫자까지 포함해 종이 한 장마다 빼곡하게 글씨를 채워나갔다. 4개월여 동안 1인당 2천여 장에 달하는 종이를 사용하며 글꼴 만들기에 정성을 기울였다. 영어 알파벳과 특수문자는 할머니들한테 익숙하지 않아 마치 그림 그리듯 글자를 그려냈다.
2019년 12월 마침내 할머니들의 글씨체는 한글과 영문 폰트로 제작되어 홈페이지를 통해 정식으로 배포됐다. 일명 ‘칠곡할매글꼴’이었다. 폰트는 글씨체 원작자의 이름을 땄다. △칠곡할매 권안자체 △칠곡할매 이원순체 △칠곡할매 추유을체 △칠곡할매 김영분체 △칠곡할매 이종희체 등 5가지였다.
칠곡할머니는 코로나19라는 힘든 상황에도 또 하나 값진 문화유산을 만들어내며 문화의 수혜자에서 공급자로 우뚝 섰다. 칠곡할매글꼴이 공개되자 “폰트를 보니 가슴이 뭉클해졌다. 작년에 돌아가신 어머님 생각이 난다”며 극찬이 쏟아졌다. 폰트 제작에 참여한 추유을 할머니는 “우리가 살면 얼마나 더 살겠나? 우리 아들, 손주, 며느리가 우리가 죽고 나면 글씨를 보며 기억했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교사 출신 이철우 경북도지사는 지난 1월 25일, 70년대 교실을 재현한 경북도청 미래창고에서 칠곡할매글꼴 주인공 할머니들에게 마지막 수업을 하고 명예졸업장을 수여했다.

교사 출신 이철우 경북도지사는 지난 1월 25일, 70년대 교실을 재현한 경북도청 미래창고에서 칠곡할매글꼴 주인공 할머니들에게 마지막 수업을 하고 명예졸업장을 수여했다.

칠곡할매글꼴 날개를 달다

칠곡군은 왜관 읍내 주요 거리에 내건 현수막에 칠곡할매글꼴을 사용했다. 공직자들은 할매들의 다섯 종 글꼴로 인쇄한 명함을 쓰며 글꼴 홍보에 나섰다. 왜관읍의 한 분식집과 치킨집은 칠곡할매체를 이용해 배달 음식을 시킨 손님들에게 편지를 쓰자 고객들의 호응이 이어졌다. 칠곡할매글꼴은 칠곡군에서 방송인이자 역사학자인 정재환 전 성균관대 교수를 홍보 대사로 위촉하면서 대중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게 됐다.
연간 100만 명에 이르는 관광객이 찾는 경주 황리단길 입구에는 ‘칠곡할매 권안자체’로 ‘지금 너의 모습을 가장 좋아해’라고 쓴 가로 5m, 세로 10m 대형 글 판이 내걸렸다. 글 판을 배경으로 관광객의 기념 촬영이 쇄도하며 황리단길 사진 촬영의 명소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수원 해병대 사령부와 포항시 오천읍 해병대 교육훈련단은 “해병대 입대를 환영합니다”, “한 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이라는 현수막을 내걸기 시작했다. 칠곡할매글꼴이 장병들에게 고향의 정을 느끼게 해준다는 이유다.
충북 충주시 우리한글박물관은 칠곡할머니 글꼴로 제작한 표구를 상설 전시하고 박물관을 찾는 관람객에게 공개했다. 또 칠곡 할머니 글꼴에 담긴 숨은 이야기와 제작 과정의 이해를 돕기 위해 안내 책자를 비치하고 별도의 기획전을 개최했다. 한글과컴퓨터는 칠곡할매글꼴을 정식으로 탑재해 국내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한글 문서 작성 프로그램에서도 사용할 수 있게 됐다. 칠곡할매글꼴이 한컴오피스에 공식 탑재됐다는 소식에 할머니들은 토마토, 가지, 오이 등 직접 재배한 농산물을 상자에 담아 한글과컴퓨터에 전달해 달라며 칠곡군청을 찾기도 했다. 국립한글박물관은 정규 한글교육을 받지 못한 마지막 세대가 남긴 문화유산으로 한글이 걸어온 역사에 큰 발자취를 남기고 새 역사를 쓴 것이라며 칠곡할매글꼴을 휴대용저장장치(USB)에 담아 유물로 영구 보존하기로 했다.

대통령도 반한 칠곡할매글꼴

‘칠곡할매글꼴 모르면 간첩’이라는 말이 나온 것은 칠곡할매글꼴의 팬이 된 윤석열 대통령과 김재욱 칠곡군수의 영향이 컸다. 윤 대통령은 취임 후 첫 새해를 맞아 보낸 연하장 서체로 칠곡할매글꼴을 사용했다. 연하장에는 “76세 늦은 나이에 경북 칠곡군 한글 교실에서 글씨를 배우신 권안자 어르신의 서체로 제작되었습니다”라고 적혀있다. 자신의 글씨체가 대통령 연하장에 사용됐다는 소식을 접한 권안자 할머니는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윤 대통령은 2년 전 검찰총장 신분일 때 젊은 세대와 소통하기 위해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칠곡할매글꼴을 사용한 바 있다. 그는 “칠곡군 문해교실에서 한글을 배운 어르신의 사연을 듣고 SNS에 사용하게 된 것”이라며 “어르신들의 손글씨가 문화유산이 된 것과 한글의 소중함을 함께 기리는 차원”이라고 설명했다.
칠곡 할머니들은 윤 대통령 부부에게 설 명절을 맞아 대형 연하장(가로 90㎝·세로 60㎝)을 직접 만들어 선물하고자 했다. 김재욱 칠곡군수가 할머니가 준비한 선물을 대통령실에 보고하자 칠곡할매글꼴 할머니와 대통령의 만남이 성사됐다. 구순을 바라보는 이종휘 할머니는 링거까지 맞아가며 대통령과의 만남을 준비했다. 윤 대통령은 마치 어머님을 뵙는 아들처럼 할머니의 손을 따뜻이 잡고 눈높이를 맞추며 대화를 이어갔다. 또 대통령실 복도에 할머니가 쓴 시와 한글 공부하는 모습을 담은 사진을 전시하고 할머니가 작성한 ‘대통령에게 전하는 희망 메시지’에 서명하고 대통령 기록물로 영구 보존했다.
칠곡할매글꼴은 칠곡 할머니와 이철우 경북도지사의 특별한 만남을 통해 또 한 번 전국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교사 출신 이철우 지사는 70년대 교실을 재현하고 학교에 다니지 못했던 칠곡할매글꼴 할머니들에게 수업을 하며 명예졸업장을 수여했다. 이 지사는 “칠곡 할머니의 글씨를 처음 보는 순간 돌아가신 어머님의 모습이 떠올라 가슴이 먹먹했다”며 “어르신이 남긴 소중한 문화유산을 계승·발전시켜 평생 교육의 중요성과 가치를 널리 알려 나갈 것”이라고 전했다.

4월 16일까지 제주시에 있는 미술관 ‘걸어가는 늑대들’에서 ‘괜찮아’라는 주제로 특별 기획전이 열린다.

4월 16일까지 제주시에 있는 미술관 ‘걸어가는 늑대들’에서 ‘괜찮아’라는 주제로 특별 기획전이 열린다.

특별 기획전 개막식에서 만난 김재욱 칠곡군수, 동화작가 전이수, 칠곡할매글꼴 할머니들 , 오영훈 제주도지사

왼쪽_특별 기획전 개막식에서 만난 김재욱 칠곡군수, 동화작가 전이수, 칠곡할매글꼴 할머니들 , 오영훈 제주도지사
오른쪽_럭키칠곡 포즈를 취하고 있는 김재욱 칠곡군수와 오영훈 제주도지사

칠곡할매글꼴 문화관광상품 된다

칠곡군은 제주에서 열리는 칠곡할매글꼴 특별 기획전을 시작으로 칠곡할매글꼴 문화관광상품화에 나선다. 칠곡군은 칠곡할매글꼴 할머니들과 어린이 동화작가 전이수와 3월 16일부터 4월 16일까지 제주시에 있는 미술관 ‘걸어가는 늑대들’에서 ‘괜찮아’라는 주제로 특별 기획전을 연다. 기획전은 ‘10대 같은 80대 칠곡군 할머니’와 ‘80대 같은 10대 제주 소년’이 코로나19와 고물가로 힘들어하는 국민에게 따뜻한 위로와 사랑의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마련됐다. 전 작가가 2020년 10월 칠곡군 가산면 수피아미술관에서 가족과 자연, 사랑을 표현한 그림 전시회를 연 게 계기가 됐다. 이번 전시회에서는 전 작가의 작품 40여 점에 담긴 의미를 칠곡할매글꼴로 설명하고 칠곡 할머니의 인생과 삶이 녹아 있는 시집과 시화를 선보인다. 오영훈 제주도지사는 특별기획전 공식 포스터를 들고 기념 촬영하는 등 홍보에 앞장서고 있다. 오 지사는 “일제강점기를 온몸으로 견뎌낸 칠곡 할머니와 제주의 푸른 바다를 보고 자란 소년의 특별한 만남이 기대된다”며 “제주도민을 비롯한 관람객 모두가 깊은 울림이 있는 희망을 얻고 돌아가길 바란다”고 말했다.
칠곡군은 전시회에 이어 전이수 작가의 작품과 칠곡할매글꼴을 활용한 카카오톡 이모티콘을 제작해 가정의 달 5월을 맞아 배포할 계획이다. 이에 앞서 칠곡군 관광 명소를 배경으로 칠곡할매글꼴과 할머니들이 쓴 시를 이용해 만든 이모티콘을 제작해 배포하기도 했다. 이와 함께 칠곡할매글꼴의 문화관광자원화를 위해 ‘칠곡할매문화관’ 건립에도 나선다. 김재욱 칠곡군수가 지난 1월 윤석열 대통령으로부터 문화관 건립에 필요한 국비 200억 원 지원에 대해 긍정적인 답변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 밖에 칠곡할매글꼴을 활용한 농산물 포장지, 벽화 거리 조성 등 다양한 영역으로 확장을 시도하고 있다.
김재욱 칠곡군수는 “칠곡할매글꼴에는 일제 강점기와 산업화 시대를 견뎌내며 ‘근대 속의 전근대’를 살아온 할머니들이 남긴 문화유산”이라며 “이 글꼴을 문화관광자원으로 활용하고 다양한 상품을 개발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특별 기획전 개막식에 참석한 칠곡할매글꼴 할머니들과 전이수 작가를 비롯해 김재욱 칠곡군수, 오영훈 제주도지사, 제주도민들의 모습

특별 기획전 개막식에 참석한 칠곡할매글꼴 할머니들과 전이수 작가를 비롯해 김재욱 칠곡군수, 오영훈 제주도지사, 제주도민들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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