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 채우고
인문을 7해
모든 것이 빠른 요즘,
느림이 주는 행복감 가산면 곡4리 이야기
뭐든지 그저 빠르기만 한 요즘입니다. 물론 ‘빨리 빨리’가 나쁜 건 아니죠. 하지만 지치고 피로감이 쉽게 오는 것 또한 부인할 수 없습니다. 빠름이 주는 쾌감에서 벗어나 우리 잠시 느려져 볼까요. 여기 ‘느림의 미학’을 느끼기 아주 좋은 마을이 있답니다.
산간지대에 자리 잡은 마을
직선거리로 따지면 칠곡군청에서 그리 멀지 않습니다. 약 40㎞ 정도니 자동차가 있다면 50여 분이면 다다를 수 있죠. 하지만 대중교통을 이용한다면 얘기가 달라집니다. 무려 2시간이 넘는 긴 여정이 됩니다. 이 마을을 모두 도는 버스는 하루 4회 운영이 전부인 오로지 300번 한 노선뿐입니다. 바로 곡4리 이야기입니다.
곡4리는 다부전승기념관과 유엔 전승비가 있어 칠곡군에서도 호국고장으로 잘 알려진 가산면에 속해 있습니다. 단순히 하나의 마을 이름이 아닙니다. 가산1·2리와 응추리, 용수리 이렇
게 팔공산 서편 끝자락 가산산성 아래 4개 구역을 모두 합친 명칭입니다. 이 4개의 ‘행정리’에 자연부락만 20여 개가 넘는다고 합니다. 그리고 마을은 대부분 해발 360~450m 산간지대에 흩어져 있습니다.
느리게 가는 이곳만의 시간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차가 있다면 이곳을 찾아가는 길이 그나마 조금 수월합니다. 지난 2017년 개통된 해발 700m에 이르는 모래재를 넘으면 되기 때문입니다. 워낙 산세가 험난한 공사 구간이었던 터라 도로 공사를 시작한 지 무려 15년 만에 완공됐다고 합니다. 분명 칠곡군에 속해 있는데 곧장 이곳으로 가는 버스 노선은 없습니다. 대구에서 시작되는 300번 버스를 타면 칠곡군으로 들어왔다가 다시 나가서 10여 ㎞를 ‘빙’ 돌아 군위군을 거쳐서 들어와야 합니다.
왕래가 이토록 불편하니, 지나온 계절은 외부와 평행했을 지언정, 이곳의 시계는 다른 곳보다 조금은 느리게 갔던 모양입니다. 덕분에 광역시와 인접해 있으면서도 청정한 자연환경을 여전히 간직할 수 있었습니다.
마을 여행을 위한 정보
- 위치 : 경북 칠곡군 가산면 가산로 891번지 (산성마을 전원휴양센터)
- 연락처 : 054-972-6635
- 홈페이지 : https://blog.naver.com/sansungvil
불편함이 만들어 준 보물
완만한 곳에 축대를 쌓고 흙을 메운 다랭이논. 언제부터인가 보기 힘든 풍경이 되었지만 이곳에서는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었습니다. 방문했던 시기는 모판에 싹을 틔운 모를 논에 옮겨 심는 모내기가 한창이었던 때였지요. 일이 고되실 텐데도 논에서 만나는 어르신들마다 인사를 건네는 우리에게 밝게 웃으며 화답을 해주셨습니다.
육지 속 오지(奧地)라는 별칭을 가진 곳이었습니다. 그리고 여전히 많은 것이 조금은 불편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 불편함을 받아들이는 우리의 시선이 지금은 바뀌었기 때문일까요. 뭐든지 느리기만 했던 오지는 이제는 최고의 ‘청정함’으로 찾는 이들에게 ‘쉼’을 선사합니다. 그리고 느림이 주는 여유 있는 삶을 지향하는 이들에게는 전과 다른 삶을 펼칠 수 있는 거주지로 각광받고 있나 봅니다. 마을 구석구석을 걷다 보면 다양한 형태의 전원주택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가드닝, 텃밭, 바비큐, 장독대, 놀이터 등 특색 있게 꾸며진 마당을 살펴보며 집주인의 취향을 예측하는 것도 꽤나 즐겁습니다.
여유로움이 있는 가산 산성마을
곡4리는 산성마을이라 불리기도 합니다. 2009년 농림축산식품부가 농촌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추진한 농어촌 종합개발사업 대상지구로 곡4리가 선정되고 정비사업을 추진하면서부터죠. 가산1·2리, 응추리, 용수리 이렇게 4개 마을이 힘을 합해 새롭게 마을을 조성하게 된 것입니다.
2013년 숙박시설을 갖춘 가산산성권역 산성마을 전원휴양센터가 오래 전 폐교된 동창분교 자리에 들어섰습니다. 이후 이곳은 농어촌인성학교로도 지정돼 다양한 체험활동을 할 수 있는 학습장으로 활용됨과 동시에 2021년도에는 취사장, 샤워장 등을 갖추고 캠핑장으로도 변신을 했습니다. 떡메치기, 전통놀이, 농산물 수확 등 다양한 단체 체험 활동들 가운데 가장 인기가 높은 것은 ‘LA찰떡 만들기’라고 합니다. 솥에서 찌는 떡이 아니라 오븐에서 굽는 떡인데, 겉은 바삭하고 속은 쫀득해 떡이면서도 빵 같은 느낍입니다. 우유에 찹쌀을 넣고 반죽해 호두와 밤, 호박씨, 아몬드 등 견과류를 넣고 오븐에서 구워내면 완성입니다.
현재 이곳은 청·장년 귀농귀촌 희망자가 농촌지역으로 실제 이주하기 전에 희망지역에서 미리 살아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사업도 진행 중입니다. 3가구 7명 정도를 대상으로 벼, 사과, 감자 등의 작물을 재배하며 농촌생활을 경험해 보게 된다고 하네요. 어떤 귀농귀촌 희망자가 이곳에서 귀한 경험을 쌓게 될까요? 문득 궁금해집니다.
정감 넘치는 마을 옛 지명들
버스 300번 노선을 따라 곡4리 버스정류장 이름을 살펴보면 켜켜이 쌓아 온 세월만큼이나 오래 전부터 자리 잡아 온 옛 마을 지명들이 정감을 자아냅니다.
골짜기가 깊으며 아담하고 한가로운 큰 언덕이 있다 하여 ‘한듬’ 또는 ‘대둔’이라 불리는 곳, 산꼭대기에 숲이 마당처럼 둘러싸여 있다 하여 이름 붙은 ‘윗산당’, ‘아래산당’, 조선시대 북쪽의 군량미 보관창고로 활용됐다고 전해지는 ‘북창’, 용이 웅크리고 있다는 ‘용수리’, 마을 중 가장 오래됐다고 해 붙여진 ‘묵은터’ 등 명칭의 유래를 알아보는 것도 재미납니다.
마을을 한눈에 내려다보고 싶은 마음에 마을 어르신께 물어 대둔사라는 절이 위치한 언덕배기로 향했습니다. 조금 더 높은 위치에서 바라본 마을은 고즈넉함 그 자체입니다. 산이 마을을 ‘포옥’ 에워싸고 있어 포근한 느낌마저 듭니다. 이곳 역시 분명 이 마을만의 흐름으로 느리지만 조금씩 변해 왔겠지요.곡4리에는 느림이 주는 여유가 있습니다. 느림이 주는 행복과 풍요도 있습니다. 여러분만의 ‘느림의 미학’, 곡4리에서 한번 찾아봤으면 좋겠습니다. 힐링이 기다리고 있을테니까요.